인셉션 – 무엇이 진짜일까, 그저 선택의 문제다

8월 8 • Movie & Culture • 96 Views • 인셉션 – 무엇이 진짜일까, 그저 선택의 문제다에 댓글 닫힘

“꿈이야 생시야” 놀라운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대개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 쓰는 말이다. 현실에서 벌어졌다고 도무지 믿기 어려울 만큼 좋은 일. 바라고 바라서 꿈에서나 겨우 이뤄지는 그런 일. 말처럼 꿈은 달콤하다(때때로 악몽을 꾸기도 하지만). 꿈은 애초에 욕망의 현현이다. 드러나서 인식하고 있었든 아니든 꿈속의 모든 건 내 욕망의 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악몽 역시 욕망의 투사다. 그 욕망이 무엇에 가로막혀 있는지에 따라 어떤 악몽이 되겠지.

<인셉션>은 꿈에 관한 영화다. 아니, 그보다는 현실에 관한 영화다. 꿈과 현실이 혼재하고 그중에 무엇이 ‘진짜’고 ‘가짜’냐고 묻는 영화이니 차라리 꿈과 현실보다는 ‘선택’에 관한 영화다.

글 – 성지훈

미국, 영국 | 액션, 모험 SF, 스릴러 | 2010. 7. 21. | 12세 관람가 | 147분

#Commentary01  그저 선택일 뿐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분한 돔 코브는 다른 이의 꿈에 들어가 정보를 추출하거나 가끔은 정보를 삽입하는 일종의 ‘해커’다(영화에선 ‘추출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랜선 도둑질로는 도무지 빼낼 수 없는 무의식의 이야기마저도 빼낼 수 있다. 그는 일본인 사업가 사이토의 제안으로 거대 기업의 후계자 피셔의 꿈에 침투한다. 사이토는 피셔의 꿈에 들어가 “피셔가 물려받은 기업을 해체해 매각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통쾌한 사기극이나 묘기 같은 도둑질로 그를 골탕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그 일을 바라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 코브는 피셔의 가장 깊은 무의식으로 침투해 그가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의 씨앗을 심기로 한다. 하지만 머릿속 깊숙이 숨겨놓은 정보를 빼 오는 일과 달리 생각을 마음에 심는 ‘인셉션’ 작업은 유능한 추출사인 코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는 이미 수없이 꿈과 현실을 오가며 모종의 ‘외상’도 입었다. 코브가 추출사 일을 하면서 마음에 생긴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코브가 작업 중인 꿈속에 수시로 출몰하며 그를 괴롭힌다.

코브의 죄책감이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과거다. 코브는 사랑하는 아내 멜과 함께 남의 꿈을 드나들며 추출사 일을 했다. 꿈과 현실을 숱하게 오가던 멜은 어느 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안온한 꿈의 세계에 빠져들어 꿈속의 행복감을 현실로 인식하고 만다. 코브는 아내를 꿈의 세계에서 꺼내기 위해 그녀의 무의식에 ‘이곳은 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멜은 코브와 함께 현실로 돌아왔지만 코브가 무의식에 심어놓은 생각이 잔존해 지금 이곳마저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곳도 어쩌면 꿈일지 몰라. 그리고 그녀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꿈을 자각할 수 없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속에서 현실을 경험한다. 현실이 그런 것처럼 도무지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날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만일 어떤 고통도 없이,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평온할 수 있는 행복한 ‘현실’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해서, 이젠 이 안온하고 행복한 현실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온전하고 행복한 세계를 포기할 수 있을까.

영화에는 꿈을 꾸기 위해 어둡고 음침한 지하 골방에 모여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모인 사람들. 마치 아편굴 같은 곳에 모여든 그들에 대해 아편굴 주인은 “이미 꿈이 현실이 돼버린 이들”이라고 말한다. “잠들러 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러 오는 사람들”. 그들의 현실은 아편굴에 누워 잠들어버린 몸뚱이일까, 달콤하고 안온한 저 너머의 세계일까.
영화 속에나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편굴은 영화 밖 현실에도 존재한다. 지하 골방 피시방에 앉아 자기의 아바타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스마트폰 속 SNS에서 또 다른 자아와 또 다른 세계를 짓는 사람들. 모니터 바깥보다 온라인의 달콤함을 ‘현실’이라고 선택하는 사람들.

영화의 마지막, 코브는 죄책감을 털어내고 마침내 현실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는 이 행복한 현실이 혹시 꿈은 아닐까 의심한다(영화에는 코브가 꿈과 현실을 구분해 판단하기 위한 장치로 작은 팽이가 등장한다. 팽이를 돌려 시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으면 꿈속이란 의미다). 하지만 그는 진위를 확인하지 않는다(이 연출 덕분에 개봉당시 관객들은 결말을 두고 갑론을박했다. 코브가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에 돌아온 것인지).

#Commentary02  당신의 팽이

코브가 꿈속에 들어가는 건 자본의 요구에 의해서다. 자본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달콤함을 제시하고 누군가 달콤함에 빠져있는 사이 그는 꿈속에서 무언가를 훔친다. 달콤한 미몽에 빠트리고 그 사이에 무언가를 빼앗는 건 현실에서의 일과 닮아있다.

영화가 나오던 당시(2010년)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광풍을 맞고 있었다.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에 빠트려 대출을 권유하고, 그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다시 꿈속의 꿈으로 밀어 넣는 ‘파생상품’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꿈속의 꿈으로 연환해 들어간 코브의 꿈이 마침내 붕괴했던 것처럼 현실의 경제체제도 붕괴했다. 사람들은 아편굴을 찾아 잠들어야 깨어나는 현실을 찾아 헤맸다.

LEONARDO Di CAPRIO as Cobb in Warner Bros. Pictures?and Legendary Pictures?science fiction action film 밒NCEPTION,?a Warner Bros. Pictures release.

피셔는 코브가 주입한 생각으로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여기지만 그 생각은 주입된 거짓이다. 달콤한 사기, 피셔의 욕망은 그의 욕망이 아니다. 코브와 멜의 달콤한 세계, 아편굴의 그들이 살고 싶은 현실. 그것들은 달콤한 사기가 아니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영화의 시작은 코브가 늙어버린 사이토를 만나 이곳이 꿈이라고 알려주며 현실로 돌아가자고 제안하는 장면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첫 장면이 영화의 말미에 다시 반복될 때 비로소 관객들은 장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원인이 먼저 발생하고 그에 따라 결과가 도출된다는 인과율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는 그와 반대다. 우리의 인식은 결과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다. 사유의 경로는 시간의 흐름과 반대다. 감독은 그 모순됨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삶을 설계한 다음에야 욕망의 정체를 인식하고 욕망의 발생을 추적한다는 모순.

당신의 욕망 자체와 욕망이 이뤄낸 달콤함은 주입된 게 아니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원인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결과를 위한 원인을 찾아낸 건 아닐까. 당신은 정말 집을 갖고 싶었을까. 집을 사기 위해 무리한 대출이라도 감수하고 싶었을까.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었을까. 많은 돈은 정말 당신의 욕망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무엇으로부터 주입된 욕망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언제 어떻게 ‘인셉션’ 되었나. 무엇이 당신의 진짜 욕망인가. 그래서 당신의 욕망이 충족된 행복한 현실은 어디인가. 무엇을 진짜라고 부르고 현실이라고 정의내릴 것인가. 영화 속 코브에겐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있는 팽이가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없다.

<인셉션>이 나오기 꼭 10년 전, <매트릭스>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쩌면 가짜일지 모른다는 불안은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의 오랜 난제다(비트겐슈타인은 실제로 자기 이외의 인간들은 어쩌면 모두 설정된 자동기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적 연구를 진행했다).

Related Posts

Comments are clos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