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콘텐츠로 나를 소개할까? – 방송인 문지애의 일과 육아, 그리고 그림책

8월 2 • Interview, man • 311 Views • 어떤 콘텐츠로 나를 소개할까? – 방송인 문지애의 일과 육아, 그리고 그림책에 댓글 닫힘

2006년 MBC에 입사해 메인 뉴스 앵커로 활약했던 아나운서 문지애. 2012년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제약과 차별대우를 받고 방송사를 퇴사한 후,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에게는 육아도, 그림책 공부도, 다른 모든 일상도 방송과 연결된다. 자신이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이 담긴 모습 안에는 프로페셔널하면서도 타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있다. 인생에 궂은 날씨가 또다시 찾아온다 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내공을 쌓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얼마 전 TV 예능프로(MBC 복면가왕)에 출연하셨잖아요. 가면 속 인물이 문지애 씨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노래를 정말 잘 하시던데요?
제가 노래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긴장 안 하고 부담 없이 녹화했어요. 즐기면서 불렀죠.(웃음)

2012년 파업에 동참한 후 MBC를 퇴사하고 7년 만에 방송에 출연하셨잖아요,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
노래를 다 하고 가면을 벗은 채 현장을 둘러보는데, 이곳에 다시 오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친정 같기도 하고 이방인이 된 기분도 들었고요.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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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정상화 되는 과정을 지켜보시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7년 전 일이지만 그 당시 방송국이 파업하는 과정에서 많은 직장 동료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말 못 할 고통을 겪었어요. 그렇게 힘든 고비를 겪다가 저는 중간에 회사를 나왔고, 마지막까지 견디며 지금의 방송국을 일구어낸 분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 당시 일들로부터 영향받지 않으려 무척 애써왔는데, 이번 방송을 보니까 여전히 아픈 감정과 기억 속에 서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때 그 시절은 잊지 않되, 아픈 감정에서는 나와야겠다고.

퇴사 후 대학원을 가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아동상담학을 공부했어요. 제가 사대를 나왔는데 재학 중일 때 교사가 되기보다 상담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푸름밤이라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도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라는 말만으로는 해소하기 힘든 사연을 많이 접했어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고, 세심하게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상담 공부로 이어진 것 같아요.

실제로 상담 공부를 해보니 어떠셨어요?
미술이나 언어 등 다양한 매체로 청소년을 상담하고 치유하는 공부를 3년 가까이 했어요. 요즘 제가 푹 빠져 있는 그림책으로 독서치료를 해볼 수도 있겠더라고요. 결론이 나지 않지만 독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인도하는 책들로 치료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상담이 저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방송 외에 또 다른 직업으로 가져보고 싶을 만큼 공부에 빠져있었는데 아직은 수련과 경험이 더 필요한 상태예요.

너무 힘들고 무거운 사연을 접하면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상담자의 치유도 중요해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상황과 상태를 잘 공감하고 느낀다는 말이거든요. 정신적인 피로감이 많이 쌓이는 거죠. 상담을 하는 사람은 또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서 반드시 내담자가 되어야 해요.
실습을 하면서 내담자도 되고 상담자가 되는 경험을 했는데요, 나중에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겠지만 방송을 할 때 무의미한 말들을 내뱉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부를 했어요.

본인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셨나요?
상담이 나를 들여다보는 직업이더라고요. 나라면 어떨까? 나라면 이 일을 어떻게 느꼈을까? 그 일을 겪은 상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계속 물어보는 작업이었어요. 방송에 연연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보면서 상담을 공부할 수 있어서 시기적으로 적절했던 것 같아요.

지난해 엄마가 되셨잖아요, 일 년 남짓 아이와 지내온 시간은 어떠셨어요?
행복한데 힘들어요. 일을 한창 할 때 노동의 강도하고는 또 다르더라고요. 밖에 나와서 일을 해도 머릿속에 20% 정도 아이의 자리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밖에서 일이 끝나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상태로 평생 가는 건가?(웃음) 홀가분한 느낌이 아니라 늘 신경 쓰이는 거 있잖아요. 행복하지만 힘들다는 게 솔직한 마음 같아요. 그런데 아이 낳기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형태의 즐거움은 있어요.
나를 힘들게 하지만 유일하게 웃게 만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존재가 탄생한 거더라고요. 분유를 먹을 때는 이유식을 시작하면 좀 낫겠지 싶었는데 다음에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튼 육아는 대단한 일이에요.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방법을 일찍 알았다면
상처나 아픔이 더 빨리 치유되고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이한테도 책이 인생의 나침반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그보다 먼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결혼하고 인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고 달라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엄마 문지애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거든요.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할 일만 잘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관계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가 혼자만의 생각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많이 느껴요. 예전에는 아이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가 보이고, 할머니가 보이고, 그 주변 친구들이 보여요. 저한테는 굉장히 큰 변화예요.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겠죠.

보통은 아이를 낳고 관심사가 육아로 좁아졌다고들 하는데 관심사가 넓어지셨다니, 새롭네요.

아무래도 일 때문인 거 같아요.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요. 그 일들을 깊게 살피면 또 다른 콘텐츠와 전문성이 생길 수 있겠더라고요.
일반적인 워킹맘에게 육아와 일이 구분돼 있다면, 저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 아이에게 보여주는 책과 장난감, 그리고 아이를 향한 감정까지, 방송에서 남들과 다르게 말할 수 있는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를 낳고 관심사가 넓어졌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어요.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느껴집니다.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큰 기획사, 큰 방송사에 있다고 해서 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콘텐츠가 있어야 하거든요. 전문분야를 찾아서 꾸준히 공부하고 개발해야 하는 시대죠. 무엇이 방송과 연결될 수 있을까. 무엇이 나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문지애 씨 SNS 계정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글을 많이 봤어요.

인생의 고비를 맞을 때,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도 명쾌한 해답을 듣지 못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때로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방법을 일찍 알았다면 상처나 아픔이 더 빨리 치유되고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이한테도 책이 인생의 나침반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그보다 먼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한 권씩 사서 보여줬는데 무언가 놓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그림책과 관련된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그림책을 분석하고 그림의 특성을 깊이 있게 탐색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문장을 볼 때면 아이들뿐 아니라 실버세대가 읽어도 좋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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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공부하기 전과 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유명한 작가 책이라면 무조건 사보았다면 이제는 작가의 세계관도 살펴봐요. 남자아이는 항상 활발한 반면, 여자아이는 치마를 입고 다소곳한 이미지로 그려진다거나, 피부색이 까만 아이들은 힘들고 가난하게 나타내는 등 왜곡된 시각을 주는 책도 있거든요.

그림책을 공부하셨으니까 다른 부모들을 대신해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을 읽어주면 좋은가요?
아이의 발달 과정과 관련된 책을 읽어주는 게 좋아요. 예를 들면, 막 걷기 시작했을 때는 아장아장 걷는 이미지나 소리가 들어간 책,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책에 관심을 많이 갖고요. 저희 아이 같은 경우 책마다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어요. 스토리는 이해 못하지만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에게 안겨있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읽어 줄 그림책은 어떻게 고르세요?
처음에는 색감을 봤어요. 아이가 좋아했던 책을 생각해보고 그 책에 나왔던 색감을 떠올려서 비슷한 책을 찾기도 하고요. 인성책, 자연책 등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스토리를 보고 두고두고 읽어 주면 좋겠다 싶은 책을 고르는 편이에요. 중고서점에 가서 아이도 보고 저도 볼 수 있는 책들을 고루고루 사 오기도 하고요.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하셨죠?
우연히 ‘책 읽어주는 누나’라는 단체를 알게 됐어요. 대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임이었는데 너무 기특했어요. 대학생 때는 주말이면 놀고 싶잖아요. 할 것도 많고. 그런데 소수의 멤버가 매주 모여 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게 기특했어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로 문의를 했더니 때마침 행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 후로도 미취학 아동과 시각장애 아동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함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이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과 관련해서 공부를 했고, 이어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고, 인생에 연결점이 있는 것처럼 전에 했던 일이 지금의 일과 이어지더라고요.

책을 읽어주는 라디오프로그램도 진행하셨잖아요. 문학을 낭독해 주셨던 것으로 아는데.
라디오는 비교적 익숙하고 많이 경험해본 장르의 방송인데 책 읽어주는 컨셉은 처음이었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진행자 역할과 많이 달랐죠. 2시간 동안 책과 음악 그 사이에 책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감상을 이야기했는데, 게스트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근황을 물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컨셉이 아니어서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책을 낭독할 때 연기를 해야 했거든요. 연기가 과하면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어떻게 하면 노래와 책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감정을 섞어 낭독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어요. 지금 다시 한다면 훨씬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문지애, 방송인 문지애의 꿈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방송인으로서 문지애의 계획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아요. 방송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웃음).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준비가 꼭 방송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유용하고 필요한 것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많은 고민이 있었으니까요. 언제든 제 관심사가 방송이 되도록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엄마로서의 계획은 매번 달라요. 요즘은 아이와 밥 먹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웃음). 아이의 울음에 바로바로 반응을 해줬는데, 이제는 아기에게 견디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목표예요. 아이의 발달 시기마다 계획이 바뀌겠죠.

책 읽어주는 방송, 책 읽어주는 봉사, 그림책 읽어 주는엄마. 문지애 씨 곁에는 항상 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은 문지애에게 OO이다.”라고 정의한다면 OO 안에는 어떤 말이 어울릴까요?
책은 저에게 환기와 같아요.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감정이 거칠어져서 마음이 탁해질 때, 생각과 마음의 공기를 맑게 해주는 게 책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견뎌야 하는 시기에는 우직하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고, 확신은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거침없이 나아가도록 도와주기도 하고요. 탁하게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도록 환기해주는 존재 같아요.

문지애가 추천하는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글 | 세르주 블로크 그림 | 안수연 역 | 문학동네

『3초 다이빙』
정진호 저 | 위즈덤하우스

『점』
피터 H. 레이놀즈 저 | 김지효 역 | 문학동네어린이

『그래, 책이야!』
레인 스미스 저 | 김경연 역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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