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람 아닌 무명한 사람을 찾을 걸.

7월 10 • 5′ reading • 154 Views • 유명한 사람 아닌 무명한 사람을 찾을 걸.에 댓글 닫힘

“병원에서 돈이 되지 못하면 간호사가 환자에게 행하는 그 어떤 일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돈이 되지 않는’ 간호사들은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면서 근무시간을 넘기는 것 정도는 당연히 여기게 됐고,
근무가 끝나면 청소 용역비용을 메울 미화원이 되어야 했다.
내가 돌보는 환자의 침대 밑에서 고개를 조아린 채 쪼그려 앉아 수세미로 침대를 닦아내던 나를,
그 누가 자신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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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테스트기에 빨간 선이 두 줄 그어진 걸 확인 하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겨우 달래며 떨리는 손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누가 제일 유명한데?” 

어느 산부인과로 가야하는지, 그 산부인과에서 누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그러니까 그 병원을 소문낸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친구를 취조 하듯 물었다. 몇 군데 더 전화를 돌리고 겹쳐지는 이름을 찾아냈다. 

“누구에게 진료 보시겠어요?” 답은 정해져있지만 그래도 물어봐준다는 투로 카운터에 앉은 직원은 내게 물었다. “OO선생님이요” “대기자가 많아서 한 시간 즘 기다리셔야 합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유명인의 진료실 옆에는 또 다른 진료실이 있었다. 한쪽은 대기자 8명,  다른쪽은 0명. 벽에 띄워져있는 모니터에 적힌 숫자가 마치 스코어 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확실히 이기고 누군가는 완패. 순간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저쪽은 왜 아무도 진료 신청을 안 할까.’ 대기명단 끝자락에 달려있는 내 이름이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까 줄이 긴 거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만 숙였을 때  풍선처럼 부푼 배 꼭대기에  툭 튀어나온 배꼽이 보일 무렵,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설고 광활한 진통이 내게 찾아왔다. 멀찍이 떨어져서 오던 진통은 간격을 좁혀왔고 어느새 관장까지 마친 나는 진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악! 아—악! 몸 마디 마디가 쪼개지면서 모조리 해체 된 것 같았다. 지렁이 같은 녀석이 사람한테 밟히면,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 밟히면 꼭 이런 느낌이겠군.

소변 마려운 느낌은 드는데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는 애매모호한 상태를 견디며 아랫니 두개가 물리적으로 뒤틀릴 만큼 이를 악 물었던 지나간 13시간을 세어보았다. 13시간 중 30분 정도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간호사 두 명이 나와 함께 있었다. 한 명은 나를 애 낳는 기계처럼 감정 없이 대했고, 다른 한 명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처럼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자궁문이 충분히 열리고 아이의 머리가 보이자 그제서야 간호사는 의사를 호출했다. 놀라운 건 아이를 잘 받아 주리라 굳게 믿었던 유명인은 보이지 않았고 생전 처음 보는 의사가 들어와 아이를 받았다는 것. “배에 힘주세요!” 하는데 더 이상은 힘을 줄 수 없던 나를 붙잡고, 곁에서 배를 힘껏 누르며 호흡을 도왔던 간호사들,  완전히 포기하고 싶었을 때, 뱃속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모든 고통이 아이와 함께 쑤욱 밖으로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의사는 침착하게 아이를 받았고 간호사들은 분주히 내 주변을 왔다갔다 했다. 탯줄을 자른 아이는 포대기에 쌓여 내 심장 쪽에 잠시 안겼다 신생아실로 갔다. 의사는 자궁문을 꼼꼼히 닫아주었고 바닥에 쏟아져 내린 피와 얼룩진 것들은 간호사들이 순식간에 정리했다. 산통에 처절히 밟힌 절지동물과도 같은 나를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휠체어에 옮겼고 회복실로 데려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짐승같이 포효하던 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던 간호사가 무척 고마웠다. 불편하지는 않을까 13시간 동안 수시로 나를 챙겨준, 내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는 그녀가 더욱 고마웠다. “어머. 아니에요.” 간호사는 당황한 듯 서둘러 작게 대답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런 말을 들어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 곁을 지켰던 또 한 명의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간호사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고, 고생스런 마음을 다독이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은 적 없기에 차가운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던 건 아닐까. 차갑든 따뜻했든 수 시간 나를 돌봐준 이들. 이럴 줄 알았으면 유명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었는데. 무명한 사람, 간호사를 찾을 걸.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2년 2개월 동안 외과중환자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쉼 없이 달려온 한 간호사의 절절한 고백이자 용기 있는 외침이다. 저자는 지난 2015년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의 편지’로 전 국민을 감동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이 전쟁 같은 사투를 벌이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의 업무 현장,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이라는 중요한 축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늘 처진 어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환경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KEY WORD

#저희들도_사람입니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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