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2월 20 • 5′ reading • 188 Views •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에 댓글 닫힘

우리는 함께 노는 것에도 실패했고 함께 사는 것에도 실패했다.
오직 그렇게 고백할 때만이 함께 진실하다. 우리가 나누어 가진 분열의 추억만이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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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지하철이 다니지 못하게 지하철로를 ‘점거’ 했고, 버스 앞을 가로막았으며, 고속버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반대 서한을 전달하고자 명동성당을 ‘침입’했고, 공공기관 건물 외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글자를 새겨 넣었다. ‘나 박경석은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박경석은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다. 그는 ‘프로 전과자’로 전과 26범의 경력을 자랑한다. 앞에서 열거한 범법행위들은 일반교통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공동주거침입 및 공동재물손괴,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1심에서 검찰은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는 왜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던 걸까? 왜 ‘정상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만 했을까.

박경석 교장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범법자가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1년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당신은 한 달에 몇 번 외출하십니까’라고 물은 질문의 답을 살펴봐야 한다.

조사 결과 ‘나는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70.5%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외출이 제한된다고 답한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저상버스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기에 장애인이 버스를 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지하철을 타려고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장애인들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실제로 2001년 1월 22일,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용 리프트가 추락.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명절을 맞아 아들 집으로 가려던 장애인 노부부가 변을 당했다. 2002년에는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동권’이 곧 ‘생존권’과 직결되었기에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 버스 도입을 요구하며 ‘30년 동안 방구석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이 비로소 세상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했던 이유도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시설이 최선의 정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분명 법을 어겼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헌법의 기본권은 장애인들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지 못했다.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 ‘비정상인’이 됐다. ‘비정상인’의 삶은 말 그대로 비정상이었다. 오래된 보일러가 터져 방으로 물이 새어들었지만 혼자서 거동할 수 없었던 중증장애인이 ‘추위를 피하지 못 해’ 죽었고, 다른 중증장애인은 불이 났음을 인지하고 119에 신고도 했으나 혼자 거동할 수 없어 죽음을 맞았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시, ‘밖으로’ 나왔다. 중증장애인의 활동 보조 서비스를 제도화해달라며 한강대교 아스팔트에 올라 차들을 막고 기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기었고, 어떤 이는 무릎으로 서서 움직였으며, 생전 처음 신발이 닳은 이도 있었다.

‘하루를 1년처럼 수십 년을 하루처럼 살아’온 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동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노들장애인야학의 치열한 일상성에서 기인한다.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이란 가져본 적 없는 하루일뿐이었다. 외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제 몸을 던져 싸워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었다. 노들야학의 일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비장애인 교사와 장애인 학생 사이의 불편한 동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인정하고 그 불편함을 치열하게 견디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그들을 거칠게 만든 건 이 사회다. 그들은 ‘비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일 뿐이며, 우리와 똑같이 인격을 갖춘 ‘한 사람’이다.

개도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고, 사람을 달로도 보내는 시대에, 왜 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해야만 하는가. 2001년, 리프트 추락으로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2005년, 추위를 피하지 못 해, 화재를 피하지 못 해 한 생명이 꺼져갈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현재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노란들판의 꿈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노들’(노들장애인야학)은 대학로에 있는 장애 성인들의 교육 공간으로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꿈꾸는 곳입니다. 노들은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를 교훈(校訓)으로 삼고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노란들판의 꿈』은 그들의 배움, 그들의 투쟁, 그들의 일상을 정직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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