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노래는 있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

2월 20 • Movie & Culture • 418 Views • 여기에도 노래는 있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댓글 닫힘

한국 | 드라마 | 2001.10.27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 109분

 

글 – 성지훈

‘오늘 밤 주인공은 나’라고 외치는 소년들은 정말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했다. TV를 켤 때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멋지게 차려입은 그 소년들을 볼 수 있다. 꿈, 열정, 희망, 극복, 도전, 용기. 온갖 멋지고 화려한 것들이 난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말들은 도드라진다. 그건 일부러 소년들의 땀이나 눈물을 말에 덧입혀 화려한 조명이 넘실대는 무대 위에 흩뿌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단어들은 언제라도 눈부시게 빛나고 찬란하다. 모두를 설레게 하는 말.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또 여전히 가슴 한편 어디에 남아있을 거라고 나직거리게 하는 말들. 그러나 그런 말들이란 실은 어둡고 음습하다. 오늘 우리가 있는 곳의 언어는 그보단 꿈이 지나간 자리, 열정이 사라진 관성,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 용기가 사라진 오늘 같은 말들이다. 어쩌면 이미 우리에겐 사라져버린 것 같은 말들이라 더 반짝이게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그까짓 말의 연출에 열광하는 것일까.

 #Commentary01 세상만사 무슨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남성 4인조 밴드다. 기타와 드럼, 색소폰과 키보드로 구성됐다. 무대는 전국 각지의 나이트클럽과 카바레다. 흔히 얘기하는 오브리 밴드. 그마저도 불경기에 자꾸 사라져가는 무대를 찾아 각지를 떠돌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다. 드럼도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시골 잔칫집 마당에서도 노래해야 하고, 정체 모를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팡파르를 연주해야 한다. 악기를 옮길 용달비를 빼면 남는 것도 얼마 없는 출연료를 받으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처음부터 시골 장바닥의 오브리 밴드였던 건 아니다. 어쩐지 어색한 4인조의 악기구성도 본래 7명이었던 멤버가 하나둘 떠나며 생긴 구멍 탓이다. 비틀즈를 꿈꾸며 서울로 모인 로큰롤 키드들은 이제 지미 핸드릭스와 비틀즈 대신 나훈아와 윤수일을 연주한다. “퀸도 우습다”던 소년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 먹고 살려고” 연주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밴드 마스터 성우는 전국을 전전하면서도 가고 싶지 않았던(차라리 섬에 들어갈지언정!) 고향 수안보로 떠밀려 돌아온다. 수안보는 성우가 ‘한국의 비틀즈’를 꿈꾸던 곳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고향. 그러나 그곳엔 그 시절의 로큰롤 키드들은 없다. 함께 비틀즈를 꿈꾸던 친구들은 어느새 삶에 찌든 생활인이 돼 있다. 술에 취해 “마음 가는 대로 따라 적은” 악보를 내밀었던 짝사랑 인희는 차장수 아줌마가 됐다. “나는 로큰롤을 사랑해”하고 무대에서 외치던 그녀는 이제 감자 한 두 박스쯤은 너끈한 생활인이다. 십수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난 밤, 성우는 “세상만사 모든 것이 뜻대로야 되겠냐”고 노래 부른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실패한 밴드의 와해기다. 악전고투 끝에 꿈을 이루는 드라마 같은 건 없다. 그들은 부유하고 표류하다 마침내 어느 곳으로 침잠한다. 술과 도박, 약에 빠져 사는 촌뜨기 드러머는 좋아하는 여자를 바람둥이 키보디스트에게 빼앗기고 팀을 떠난다.

바람둥이 키보디스트는 친구에게서 뺏은 여자의 기둥서방에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밴드 마스터 성우에게 기타를 가르쳐준 스승은 술에 찌들어 살다 홀연히 떠난다. “죽을 때가 됐다”면서. 이 밴드에는 도무지 희망이라는 건 없다. 차라리 리듬박스와 노래방 반주를 틀어놓은 ‘가짜 악사’가 나이트클럽에서 더 인기다.

사실 희망이라는 것은 얼마나 고약하고 불온한 말인가. 희망은 더 나은 내일을 뜻하지만 실은 그래서 내일보다 비참한 오늘을 전제하는 말이다. 내일이 돼봐야 오늘보다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냥 코 박고 죽을 수는 없으니 그저 간신히 붙들어 잡고 오늘만을 견디게 해주는 말.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성우가 룸살롱에서 벌거벗고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대단하신 사장님들’과 술집 여종업원들이 벌거벗고 벌이는 광란의 파티에 불려간 성우는 만 원짜리 한 장을 팁으로 받고 알몸이 된 채 노래를 부른다. 룸살롱 노래방 모니터 화면엔 어린 시절, 성우와 친구들이 꿈꾸던 와이키키의 해변이 비친다.

기계로 만든 기타와 드럼 소리가 악기를 대신하는 것처럼, 하얀 요트와 야자수와 내리쬐는 햇볕의 와이키키는 모니터 화면 속에만 있다. 성우 앞에 펼쳐지는 와이키키의 잔상은 역겨운 광란의 파티를 보조하는 실상이기도 하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러구러 살아가고 있다는 슬픔과 자조. 가짜 악사와 가짜 나훈아와 가짜 와이키키를 바라보면서 좌절하지만 실은 성우도, 또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멤버들도, 성우의 첫사랑 인희도 알고 있다. 우리 역시 가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은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그래서 저 화려하게 눈부시고 빛나는 것들을 보면서 그리워하고 선망하고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그 부질없는 열망 뒤엔 부박한 현실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도.

 #Commentary02 수안보와 와이키키 사이

그렇지만 영화는 그 부질없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응원한다. 고단해도 삶은 살아지는 것이라고, 그래도 노래는 부를 수 있다고, 어쩌면 그래도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이름을 처음 고안한 ‘충고 보이스’ 시절의 친구는 성우에게 묻는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니?” 채소 장수 인희의 거래처 떡볶이 가게 주인 언니이면서 가끔 밤무대에 ‘가짜 이엉자 언니’로 출연하는 가수는 관객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가짜면 어때유? 싼 맛에 보니 좋지 뭘 그래유?”

삶은 꼭 진짜여야 할까. 유려하고 화려한 조명이 비추고 카메라와 관객이 가득한 무대에서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아니, 사실 진짜는 뭐고 가짜는 또 뭔가. 나훈아 덕에 먹고 산다는 너후나나 나우나나, 싼 맛에 보는 이엉자나 리듬박스에서 나는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가짜 악사들이나, 그들에게도 삶은 있는 법인데. 진짜가 될 희망 따위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가짜들이 모두 실은 진짜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니까. 그러니 우리가 부여잡고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은 고작 ‘진짜’가 되려는 희망이 아니라, 이미 진짜인 나를 지키려는 희망이다.
와이키키 해변 따위. 수안보의 와이키키 관광호텔에도 따듯한 물이 나온다. 수안보가 왜 가짜란 말인가.

 #Commentary03 사랑밖엔 난 몰라

영화의 마지막. 인희가 다시 무대에서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순간은 어쩌면 가장 따듯하고 행복한 결말이다. 수안보를 떠나 여수의 어느 밤무대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 성우와 인희, 그리고 팔을 다쳤는지 코드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것 같은 키보디스트 정석까지. 세상의 온갖 곳에서 다치고 상처받은 그들은 또 어딘지 모를 온갖 곳에서 상처받은 카바레의 중년들에게, 또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 따듯하고 별것 아닌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사랑밖엔 난 모른다고, 그러니 괜찮지 않냐고, 인희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고, 성우는 그래도 여전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든다고. 수안보에도 여수에도, 또 당신이 살고 있는 그 보잘것없고 햇볕도 들지 않는 그늘진 땅에도 삶은 있다고. 실패하고 다쳤어도 그것 역시 삶이라고. 그 절절하고 처절한 삶에도 스며들 노래와 사랑이 있다고. 그것밖엔 난 모른다고.

TV를 켤 때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나오는 소년들에게도 상처와 아픔이 있겠다. 마찬가지로 무대도 조명도 없이 변두리 지하 골방의 노래방에서 지나간 옛날 노래를 울부짖는 당신에게도 영광과 희망은 있다. 그 자리에 꿈이 지나갔으면 어떤가, 열정이 사라졌으면 또 어때. 그것도 삶이고 여기에도 노래는 있는데.

 #Commentary04 그들이 찾은 와이키키

2001년에 나온 영화에는 지금은 스타가 된 배우들이 나온다. 이제 영화에 나왔다 하면 관객 천만 명은 우스운 황정민은 촌뜨기 드러머 강수를 연기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국민배우가 됐다. 성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건 해사한 얼굴의 박해일이다. 사랑에 목마른 소년의 얼굴을 가진 배우의 시작이 바로 이 영화였다. 노래 한 소절로 영화의 진심을 전달한 인희는 배우 오지혜가 연기했다. 이밖에도 박원상과 오광록, 류승범이 등장한다. 전작인 <세친구>에서부터 마이너한 감수성을 조물 하던 임순례 감독도 이제는 충무로의 거장이 됐다. 저마다의 와이키키에 다다른 이들.

지금은 국민배우가 된 이도, 조금은 잊힌 이도, 여전히 수안보의 오브리 밴드 같은 삶을 사는 이도 영화의 안과 밖에 얽혀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도 가짜는 아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수안보이든, 와이키키이든 삶은 살아지는 것이고, 삶의 주인공이 반드시 화려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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